9월 전시 <담기다:채(彩)우다> – 이정현 작가(백자일상)


찻잎을 처음 내어두는 다하
차를 우려내는 다관
찻물이 잠시 쉬어가는 숙우
입술에 닿는 찻잔

우리네 찻자리를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독특한 차도구와
차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거 정말 예쁘지 않아요?

이 학 어떠세요? 어딘가 맹해 보이는 학인데 계속 눈길이 가지 않나요? ‘어디선가 본듯한데.’ 하는 생각을 1년이나 하다가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어릴 때 보았던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펭귄 맥그로우를 묘하게 닮았습니다. (여기서 에디터의 나이를 유추하시면 안 됩니다. 찡긋) 이 작품을 처음 만난건 2022년 차문화대전이었어요. 2월에 티웃 앱을 오픈하고 처음으로 현장에서 티웃을 홍보하던 날이었죠. 차문화대전은 생애 처음 참여하는 차문화 행사였습니다. 이 때는 차를 마신지 얼마 되지 않아 개인 차도구도 없었고 차나 차도구의 지식이나 흥미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른 팀원이 “이거 정말 예쁘지 않아요?” 해도 어디가 예쁜지 모르는 수준이었죠. 그러다 만난 것이 곱디 고운 백자 위에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조금 맹해 보이는 학이었습니다. 그리고 팀원에게 말했죠. “이거 정말 예쁘지 않아요?”

이름도 생소한 ‘청채 백자’라구요?

그렇게 백자일상과 인연이 되어 1년이 지나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백자 위에서 뛰노는 동물과 식물 보는 재미에 신났고, 이번 전시도 내심 그런 백자들을 볼 수 있겠거니 생각했죠. 그러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티웃 전시를 위해 준비한 작품들이라며 이정현 작가님이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그걸 보고는 “어? 이건 백자가 아니지 않나요?” 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제가 생각한 백자는 하얀 도자기인데 보내주신 사진의 도자기들은 모두 물감 속에 빠졌다가 나온 듯 했으니까요. 이번 전시에 소개할 백자는 교과서의 새하얀 백자나 푸른색 그림으로 일부만 장식된 청화 백자만 생각하셨던 분들이라면 다소 생소할 ‘청채(靑彩) 백자’랍니다.

청채 백자는 한자 뜻 그대로 청을 칠한 백자예요. 오래 전에는 청화 안료로 그린 그림인 ‘청화(靑畫)’로 장식 기법을 분류하지 않고 모두 청화 백자라고 불렸는데요. 근래에 들어 청화(靑華) 안료 장식 기법은 그림을 그리는 ‘청화’와 채색을 하는 ‘청채’로 나눠 부르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이번 전시를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색감으로 청채 백자를 만들어주셨는데요. 기존 청채 작품들은 강렬한 파랑색으로 시원한 동해 바다를 연상시킨다면, 이번 청채 작품들은 에메랄드 빛 바다에 휴양을 온듯한 느낌을 줍니다. 어떤 작품은 백자 위에 숲의 녹음(綠陰)을 표현해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줘요. 처음엔 ‘이게 백자가 맞나?’ 라는 생각을 하던 저도 눈길이 계속 가던 백자 위의 학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어요. 백자일상의 청채 백자를 본 여러분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이번 전시로 청채 백자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매일 도자기로 특별한 일상이 되길

도자기에 차려내는 특별하고 즐거운 일들이 일상이 되길, 매일의 일상이 도자기를 통해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한다는 의미로 지은 ‘백자일상’. 이 전시 매거진을 읽는 모든 분에게 백자일상의 뜻이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라며 작가님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Q.작가님은 도자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 사실 부모님이 도예가라 도자기는 어릴 적부터 친숙했었고 고등학교도 도예고를 갔었어요. 그 때는 도자기에 흥미가 없어서 진로까지 고민 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양이잔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양이잔은 손잡이가 양쪽에 달려서 양이잔인데요. 동양 잔에서는 흔치 않은 형태라 관심이 생기면서 ‘저건 꼭 만들어봐야겠다.’ 생각을 하며 공부 하고 흙을 만지기 시작했네요. 그 뒤에 전통대에 입학해서 백자, 분청 등 전통에 대해 다양하게 공부했어요. 백자로 차도구를 만든건 대학교 4학년 때 졸업 작품으로 시작했어요.

Q.작가님의 백자는 따뜻한 하얀색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가공 중인 흙, 살짝 쥐었다 펴면 뭉쳐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저는 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바탕이 되는 흙인 태토부터 연구를 많이 했었어요. 도자기를 만드는 데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카올린이라고 부르는 점토인데요. 저는 주로 합천의 카올린과 배합을 해서 사용해요. 원하는 느낌대로 카올린과 다른 흙들을 배합하면 같은 백자여도 이렇게 따뜻한 느낌이 나는 하얀색을 낼 수 있어요.

Q.청화 백자는 들어봤는데 청채 백자는 생소해요. 청채 백자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청채는 청화와 달리 그림이 아닌 도자기에 채색을 하는 기법이에요. 저는 파랑색과 바다를 좋아하는데 푸른 바다같은 청채 유물을 보고 반하게 되었어요. 그 시대에는 청화 기법이 더 흔했는데 이 청채 기법은 흔하지 않고 취향을 보여주는 기물이라 관심이 생겼어요. 그 뒤에 석사 논문을 청채로 주제로 쓰기도 했고, 나중에는 차도구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걱정했었는데 실제로 만들고 보니까 따뜻한 차와 시원한 청채의 반전 매력이 서로 어울리는거 같더라구요.

Q.청채가 취향을 보여준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이: 조선 시대에 청화 백자를 만드려면 청화 안료인 코발트가 있어야하는데 이건 외국에서만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굉장히 비쌌고 영조,정조 때는 코발트가 금보다 비싸서 청화 백자를 서민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적도 있어요. 이후 철종 때 서양 문물이 유입될 때라 점점 수급이 원활해졌어요. 덕분에 청화가 넘쳐나서 그림을 그리다 못해 도자기 겉에 가득 칠할 수 있는 수준이 되죠. 이 시대 유물을 보면 잉어 연적을 청채로 칠해달라고 의뢰한다던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것을 가지려는 흔적이 보이는 유물들이 있어요. 지금도 나만의 취향을 반영한 것들을 가지고 싶어하잖아요. 그 때나 지금이나 취향을 보여주는 것들을 좋아하는거죠.

작업실에 놓인 푸른 청채 다관

Q.이번 청채 작품들은 파란색보다는 초록색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 매번 진하게 칠하다가 청화 안료를 연하게 칠하니 초록빛이 돌더라구요. 항상 진하게 칠해서 몰랐던거죠. 이렇게 칠한 작품은 처음이기도 하고 색상도 티웃이나 차 색상이랑도 비슷해서 이번 전시에 특별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연하게 칠하다 보니 농도 조절도 중요했고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작품입니다. 보는 분들도 신선하다고 느끼실 거 같았구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좀 더 특별하도록 순백자는 제외하고 모두 청채 백자로만 구성을 해봤어요.

Q. 작가님은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얻으시나요?

이: 일상에서 오는 것들도 있지만 과거의 유물이나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다양한 영감을 얻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유물과 미술품, 공예품, 디자인, 형태, 장식 등이 다양하잖아요. 하루 종일 작업장에서 작업만 하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여유가 된다면 어디든 여행을 가려고하는 편입니다. 박물관이나 도록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Q. 작품을 만드실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만드시나요?

이: 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인데 매 작품마다 법고창신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는 손잡이를 틀에 흙물을 부어 만드는 캐스팅 기법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어요. 이런 현대적인 방법을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에 맞게 다시 고쳐써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게 제 목표입니다.

Q.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이: 어려운 질문이네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차도구를 만들고 싶어요. 세련되고 쓰임새 있어서 선물로 받으면 좋아하고 돈 주고 사더라도 좋아할 만한 어설프지 않은 도자기를 만들고 싶네요. 한마디로 쓰임새 있는 도자기, 공예품을 만들고 싶어요. 2019년도에 ‘사유’라는 주제로 단체 전시전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의 사유는 ‘그릇을 남기다’라는 뜻으로 복잡한 의미 없이 나의 그릇을 전시로 남기겠다는 의미였어요. 그리고 현재의 사유를 물어보신다면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의 사유입니다. 저는 항상 몸으로 도자기를 만들어왔어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예 작업을 하면서, 몸이 아닌 머리로 수많은 부분을 생각하면서 진행하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아마 앞으로도 저의 사유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일 듯 하네요.

Q.앞으로 작가님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좋을까요?

이: 저는 예술을 하는 사람보다는 공예를 하는 사람이에요. 쓰임새가 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공예가, 이정현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정현 작가의 작업장 출처: 이정현 작가 인스타그램(@dl_jeong_hyun)

이정현 작가님의 작품은 9월 22일부터 티웃 스마트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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