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의 차 박람회 관람기 4 : 제1회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2023년 10월 05일, 글쓴이 오션

처음 만나는 전시회,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첫 개최 행사라 기대되었던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예매는 네이버 사전 예약으로 진행되었어요. 사전예매가 1,000매를 넘었다는 소식에 입이 쩍 벌어졌는데요. 평소 궁금했던 다원과 작가의 작품은 물론, 다양한 차 행사를 서울에서 이틀간 만나볼 수 있다니 예매를 안 할 수 없겠죠?

개최 장소는 종로 통인동에 있는 ‘보안’이라는 여관이었어요. 1942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60년 이상 운영된 진짜 여관이었다고 해요! 옛 모습을 잃지 않은 여관 공간 안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어요.

전시회는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었어요. 출입구가 한 곳이라서 입장, 퇴장객이 한자리에 모인데다, 우산까지 쌓여 좁게 느껴졌지만, 그만큼 차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뿌듯했어요. 대기줄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과 천장을 둘러보니 세월에 깎여 앙상해진 목재와 얼기설기 뜯기고 눅눅해진 벽지가 눈에 띕니다. 오래된 건물임이 와닿는 순간이었죠.

눈으로 주변을 구경하는 동안 금방 차례가 왔어요. 생각만큼 오래 기다리지 않아 좋았습니다. 입장료는 5,000원, 예매권을 내면 내부 지도와 함께 손목에 입장 띠를 둘러줍니다. 이 때 둘러주는 입장 손목띠를 버리지 않는다면 재입장이 가능했는데요. 덕분에 중간에 나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든든한 몸과 마음으로 행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A. 흙과 나무의 시간

손목띠를 두르고 입장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렇게 낡은 건물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된 게 놀라웠어요. 그 중 가장 놀랐던 건 낡음의 어떤 한 부분도 버리지 않고 전부 배경으로 활용한 전시였습니다. 오래된 건물 속에 전시된 기물을 보니, 도심 속에 있는 경복궁을 외국인 시점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새로웠습니다.

여태까지 관람했던 전시는 긴 테이블을 붙여놓고 기물을 정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이렇게 방마다 작가별로 따로 전시를 해두니, 공간이 분리되어 기물이 가진 개성이 더 돋보였고, 무엇보다 한 작가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서 획기적이었습니다.

방마다 전시된 기물을 정신없이 보다 보니 어느새 복도 끝이었어요. 끝인 줄 알았는데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 야외부스를 마주치게 됩니다. 구관 야외 부스 존에서는 차 관련 수납 가구와 블랜딩 차를 소개하고 있었어요. 들어오자마자, 차마다 적힌 작은 글귀가 눈에 띄어 읽어보았습니다. 차의 맛과 향을 적어놓았더라고요. 시향도 해볼 수 있었어요. 그 외엔 차와 즐길 수 있는 다과와 사진에는 없어 아쉽지만, 화려한 티 퍼포먼스, 그리고 오래된 목재를 활용한 멋진 찻장도 있어 눈앞에서 직접 만져보고 가구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구경으로만 끝날 줄 알았는데 야외 부스에서 운영하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참여하게 되면 사진처럼 랜덤티를 뽑을 수 있었는데 곱게 접은 예쁜 종이봉투에 차가 담겨있어서 기분도 좋고 즐거웠네요.

야외부스를 모두 둘러보았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 봅니다. 지도를 보니 입장했던 방향으로 돌아가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고 합니다. 계단을 올라가니, 1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차 도구’라고 하면 도자기만 떠올랐는데,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결을 가진 작품들이 가득했어요. 여름을 닮은 투명한 유리작품도 있었네요. 가까이서 보는 건 물론, 만져보고 직접 사용까지 해볼 수 있어서 유리 다구가 올려진 나의 여름 찻자리가 계속 상상되어 구매하지 않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심지어 계곡에서 만날 수 있는 ‘이끼가 낀 돌’도 찻자리에 둘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감각적인 작품이었어요. 정말 신선하지 않나요?

A관을 모두 관람하면 신관으로 가야 합니다. 신관으로 건너가려는 길목에는 차 뉴스레터인 ‘더티레터’가 있었네요. ’티맵’이라는 참여형 부스였는데, 내가 알고 있는 찻집을 포스트잇으로 공유하는 거였어요. 이렇게 관람객의 참여로 내가 몰랐던 찻집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는데요. 많은 분이 참여해 주신 덕분에 저도 티맵을 한참 구경했어요.

B. 보안책방

통로를 지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장소는 신관의 2층, 보안책방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다양한 주제가 담긴 독립 출판 서적으로 가득 채워진 곳이지만 이번엔 차 문화 행사인 만큼 차 관련 도서와 한국 작가의 차 기물로만 공간이 채워져 있었어요.

평소엔 책 여러 권이 놓여 있는 테이블인데, 기물이 전시되어 있네요! 딱 책만 보느라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렇게 차 기물이 올라가 있으니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파도 같은 테이블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곡선을 따라 전시된 기물이 한 층 더 돋보이기도 하고, 빽빽하게 전시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띄엄띄엄 놓으니, 기물에 좀 더 이목이 쏠리네요.

E~F. 차와 차를 담는 그릇

많은 수의 기물이 있는 게 아니어서 보안책방에 머무는 시간은 타 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보안책방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오르면 보안책방의 위층인 3, 4층에서는 ‘차와 차를 담는 그릇’ 전시를 만날 수 있는데요. 들어서자마자 먼저 마주친 건 일본식 도자기 수리 기법인 킨츠키였어요.

킨츠키, 차 도구를 구매하기 전, 깨진 것을 굳이 살리려는 게 의아하기도 했었고, 굳이?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차를 시작하고 나니 킨츠키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애정이 깃든 기물은 쉽게 못 보내는 법! 애정은 물론, 시간까지 깃들어 있는 다구를 깨졌다는 이유로 보내기엔 너무 마음이 아프잖아요. 게다가 어디선가 들었던 ‘깨진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온다.’라는 말은 완벽주의에 지나치게 집착했었던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더욱더 와닿았던 계기가 되었어요.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킨츠키는 흉터가 아니라 하나의 무늬로 보이게 되었죠.

킨츠키를 보고 뒤를 도니 여러 개의 방이 있었어요. 방 안에는 구관처럼 작은 개인 전시전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처음 보는 전시 구조에 놀랐는데요. 특이하게도 발목 높이 정도의 낮은 마루 위에 기물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기물을 자세히 보려면 무릎을 꿇거나 앉아야 했어요. 통로가 협소하여 한 사람이 중간에 구경하려고 앉으면, 다음 사람은 기물을 가까이서 관람하지 못해 여러모로 많이 아쉬웠던 전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참, 기물 옆에는 블렌딩 차도 함께 있었어요! 평소 궁금했던 차의 향도 직접 맡아보고 잎의 생김새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쪼그려 앉아 열심히 시향을 했답니다.

계속 쪼그려 앉아서 구경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기물을 계속 보면 다음 사람이 관람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 들여 찬찬히 들여다볼 수 없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 계속 쪼그려 봐야 하나 고민하며 다른 방으로 이동했는데 해당 방은 쪼그려 앉을 필요 없이 편안하게 탁자에 전시되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답니다.

C. 열린 공간에서의 티 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열린 공간에서의 티 페어’ 전시관이 나왔어요. 타 전시관과는 조금 다르게 젊은 층의 느낌이 났는데, 여태까지 본 적 없던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감을 가진 재밌는 다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열린 공간에서의 티 페어라는 이름답게 부스마다 작은 다회도 진행되고 있었어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햇차는 물론, 다양한 차를 시음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답니다.

이번에도 놓치지 않고 개인 찻잔을 챙겼습니다. 일회용 컵 사용을 줄임으로써 환경도 지킬 수 있지만, 평소 자주 사용하는 개인 잔으로 차를 맛보면 취향에 맞는 차를 찾기가 더욱더 수월해지거든요.

기물이나 찻잎뿐만 아니라, 이렇게 차 여행을 하는 귀여운 캐릭터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 다양한 MD는 물론,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러워 엽서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는지!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가 차를 알려주니, 어려워 보이는 차 입문도 어쩐지 수월해질 것 같았어요.

다양한 MD 중, 눈에 쏙 들어왔던 건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것 같은 차 기록 스탬프였어요. 차를 어떻게 마실지 모르는 친구에게 찻잎을 나눠줄 때 소분 봉투에 찍어서 선물해 주기에 정말 좋아보였거든요. 이 외에도 열린 공간에서의 티 페어 전시관엔 시음 부스와 기물 전시 부스가 반반 나눠져 있어 양쪽으로 즐길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평소 궁금했던 차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 그동안 성분과 설명만 보고 맛과 향을 유추하는 게 답답했었는데. 이렇게 시음을 해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이 외에도 다구의 질감, 실제로는 어떤 모습, 어떤 색감일지 궁금했던 기물까지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어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자리였죠. 이렇게 돌아보니 ‘아, 역시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D. 조명과 음악이 있는 티하우스

은은하게 비치는 조명을 보니 다른 공간에 비해 어두운 곳임을 알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신나는 음악이 빠르게 둥둥! 경쾌함이 느껴지는 이름 그대로 ‘조명과 음악이 있는 티하우스’ 였습니다. 기물보단 시음에 집중된 층으로 다양한 차 시음과 다식을 맛볼 수 있는 관입니다. 조금 아쉬웠던 건 큰 음악 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 하고, 설명도 바짝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 했던 약간의 수고로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타 전시관과 비교했을 때 가장 생기가 도는 층이었으며, 가장 젊음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인지라 뜨거운 차보단 냉침을 준비해 주신 부스가 많아서 덕분에 더위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D관은 블렌딩한 차를 선보이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요. 그동안 싱글 티를 주로 소비해 왔던 사람이라면 블렌딩 차의 다채로운 맛과 향에 놀라고, 매력을 알아가는 자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식도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어요. 시식인가? 하고 과자에 손을 뻗는 순간, 안내문을 나눠주시며 각 과자에 어울리는 차, 음료를 세세히 설명합니다. 그렇게 과자 하나의 설명이 마무리될 때마다 손 위에 과자가 올려졌습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이 과자는 우롱차와 어울리겠다! 싶어 놀라웠지요.

단순히 다식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어쩌다 이런 다식을 고안하고 또 만들게 되었는지, 어떤 차, 음료에 어울리는지, 만들어지기의 과정을 들으니 ‘과자’로만 보였던 다식이 다시 보입니다. 설명을 듣지 않고 그냥 먹었더라면 단순 과자로 지나쳤을텐데 스토리텔링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던 인상적인 부스였습니다.

백자를 닮은 멋진 패키지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고운 비단 한복도 연상되는 이 부스의 차 맛은 어떨지 마셔보았는데 정말 우아한 맛이어서 재밌었습니다. 부스의 분위기를 쏙 닮은 맛이었어요. 부스마다 개개인의 분명한 개성이 담겨 디자인은 전부 달랐지만, ‘차’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그런지 모든 부스의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해서 정말 재밌었어요. 다르면서도 같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행사였습니다.

각 부스의 팽주님들께서 열심히 마음을 꾹꾹 담아 차를 내어주신 덕분일까요. 전부 차를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고 즐기는 분위기였답니다.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

모든 구역의 관람을 마치고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와 우산을 찾아봅니다.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특이한 우산을 가져간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렇게 직접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며 기물에 대한 설명을 직접 보고 듣기도 하고, 다양한 시음을 통해 몰랐던 내 취향을 확실히 찾을 수 있는 자리었어요.
비가 내려서 공기가 무거운 탓에 기분이 안 좋아질 수도 있었는데, 출구에서 나오는 관람객들의 표정은 전부 봄 햇살처럼 밝았습니다. 다들 저처럼 취향을 찾았거나, 분명해졌을 거라 생각하니 기뻐집니다. 어쩌면 그동안 차를 어려워했던 사람도 이번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에서 차와 기물에 대한 긴가민가한 마음이 싹 정리되어 완전히 입문하지 않았을까요?

첫 개최부터 이렇게 재밌고 알찬 구성을 보여준 제1회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진입 장벽이 높아 보이지 않게, 즐겁고 멋진 차 문화 바람을 불어주었는데요. 내년에는 얼마나 더 재밌고 풍성할지 기대됩니다. 제2회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을 기다리며, 또 다른 전시 후기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 좋았어요!
– 풍성한 라인업!
– 시음부스층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좋았어요.
– 볼거리가 정말 많았어요.
– 오래된 건물속에서 현대를 느낄 수 있었어요.
– 색다른 전시방식이 좋았어요.
– 시음을 편하게 할 수 있어 좋았어요.

😅 아쉬웠어요..
– 우천대비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아쉬웠어요.
– 일부 다구에 제품 가격이 적혀있지 않았어요.
– 행사장 내 상세한 가이드가 없어 놓친 체험이 많아 아쉬웠어요.
– 이동이 불편했어요.
– 행사장이 많이 더웠어요.
– 무릎을 꿇고 보는 전시가 힘들었어요.
– 화장실 이용이 어려웠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